
우리민족은 계절따라 변화하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축복받은 민족이다. 그래서 풍요로운 마음과 넉넉한 감성을 가진 예술인들이 많이 배출되었는지도 모른다.
태어난 곳을 떠나 현실에 정착해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고향이란 단어는 그리움의 대상이다. 소슬한 가을 하늘 높은 곳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보름달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은 어느새 고향으로 달려가는 중년을 너머선 애환이 새겨진 타향살이.
감정을 억제하고 산다는 것은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자기만의 절절한 사연을 가슴에 안고 고향을 떠나 살아가는 사람들은 가을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이면 창밖을 바라보면서 초등학교 시절의 운동회가 눈앞에서 아련하게 그려질 것이다.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을 바라보며 젖거나, 또는 함박눈이 내리는 날에 고향을 그려가는 추억은 낭만으로 윤색되어간다. 사람들에게서 지난날의 기억은 언제나 환상으로 그려지는데, 추억을 쫒는 감정을 이겨내지 못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중년에 접어든 나이에 접어들었거나, 현실의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거나, 고달픈 생활을 하면서 미래를 불안하게 생각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고향을 그리면서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들 중, 아마도 동구 밖에 우뚝선 소나무이거나 뒷동산 놀이터에서 함께 뛰놀던 친구들의 얼굴이리라. 어릴적 추억을 더듬어가는 나무들은 대개 소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들로 인간과의 인연이 매우 깊은 나무중의 나무들이다.
마을 입구에 수백년을 버티고 서 있는 늙은 고목나무는 우리들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마을 사람들을 지키며 동네 사람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해온 수호신이다.
나무들은 우리들에게 모두를 주고 간다. 살아 있을 때는 그늘과 열매와 산소를, 인간에 의해 목숨을 빼앗긴 뒤에도 목재나 땔감으로 아낌없이 그대로를 주고 간다.
생색을 내지 않고 모두를 던져주는 나무와 갇은 정을 주는 친구가 옆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 없이 행복한 사람이리라. 아니라면 내가 먼저 누군가의 나무가 되어준다면 그 또한 바람직한 삶이 아닐까? 한다.
살다보면 오늘은 내 의지대로 만들어갈 수는 있을 것이나, 지나가버린 어제는 어쩔 수 없는 날이다. 사람이 건강할 때는 사랑과 행복한 삶의 꿈을 꾸지만, 늙고 병들어가는 연령에 접어들 때는 걱정과 슬픔과 지난날들을 회한(悔恨)에 실어서 더듬어간다. 그래서 고향을 그리원한다는 것은 늙어간다는 증거다.
세상을 아름답게 살고 싶거든 꽃밭을 가꾸면서 살고, 편안하게 살고 싶거든 바람이나 물처럼 흘러가는 대로 순리를 따르라고 했다. 꽃은 자신을 자랑하지 않으며, 바람은 험준한 산등성이도 불평하지 않으면서 넘어가고, 물은 어떤 질곡(桎梏)도 가리지 않고 채우며 흘러간다.
어떠한 상황으로든 고향을 떠나게 된 이유는 나름의 사연들이 있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아무런 감정도 없이 흐르는 세월을 두고 어떤 사람은 빠르다고 느낄 것이고, 어떤 이는 너무 느리다고 표현할 것이나, 그것은 흐름이 달라서가 아니라, 서로의 삶이 다른데서 오는 차이가 아닌가 한다.
누구의 고향이든 고향은 어머니의 품속과 같은 언제나 포근하게 다가오는 그리움의 안식처다. 현재의 생활터전에 정을 붙이고 살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의 삶에서 새로운 고향이야기를 담아보는 것도 또한 생활의 지혜이리라. 현명한 사람은 더하기만 잘하는 것이 아니고 뺄셈도 잘 해야 한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