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0년, 나치 독일은 단 6주 만에 프랑스를 점령했지만 프랑스는 무너지지 않았다.
정부는 항복했지만 국민은 결코 항복하지 않았고 드골은 망명지에서 자유 프랑스를 외쳤고 시민들은 각지에서 레지스탕스로 일어섰다.
히틀러는 파리에 입성했지만 프랑스 시민들이 엘리베이터 케이블을 끊은 탓에 에펠탑 정상에는 오르지 못했다.
무력으로 침략은 가능했지만 시민들의 자존심은 점령당하지 않았다.
1950년 6월, 북한의 기습 남침은 사흘 만에 서울 함락이라는 비극을 낳았고 6월 28일 새벽 한강 인도교가 폭파되었다.
폭파 명분은 북한군의 침략을 늦추기 위해서였지만 다리 위에 수많은 민간인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대통령은 아무런 사전 통보 없이 남하했고 대한민국 수도는 허망하게 무너졌다.
그러나 민심은 무너지지 않았기에 서울은 석 달 만에 수복되었고 국민은 전쟁의 고통 속에서도 나라를 지켜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은 ‘사회 혼란’을 이유로 계엄령을 선포했다.
절차적 정당성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된 조치였고 헌법기관인 국회를 무력으로 장악하려 시도했으나 다음 날 국회는 긴급 본회의를 열어 계엄 해제를 결의했다.
이는 단지 정치적 대응이 아니라 헌법적 질서 회복의 첫걸음이었으며 그로부터 약 4개월 후인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했다.
파면 이유는 계엄령 선포와 반복된 헌법 위반, 권력 남용이 결정적 이유였으며 대통령은 헌법 위에 존재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계기가 됐다.
프랑스는 항복했고 서울은 끊겼으며 윤석열은 계엄령을 내렸다.
시공간은 달랐지만 세 지도자의 결정은 정당성과 당위성에 있어 큰 격차를 보여준다.
프랑스의 항복은 전쟁 수행 능력의 한계에서 나온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필리프 페탱은 독일 부역자로 수감 중 사망했지만 면책 가능성은 존재했다.
이승만의 한강 다리 폭파는 면책의 여지가 전혀 없는 행위였고 민간인의 생명과 국가의 기본 윤리를 저버린 결정이었다.
이승만의 파면이 당연한데도 4·19 혁명 때까지 10년 더 정권을 연장했다.
헌법은 있었지만 독재의 암흑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윤석열의 계엄령 선포는 헌법과 권력분립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한 사태였고 국회를 무력화하고 권력을 장악하려 한 시도 그것은 내란에 준하는 행위였기에 헌법은 윤석열을 파면했다.
역사는 지도자의 결정 하나로 방향이 갈린다.
그러나 그 결과를 바로잡는 힘은 언제나 국민에게서 나온다.
이번 탄핵은 특정 정당의 승리가 아니라 헌법 정신의 승리였으며 누구도 헌법 위에 존재할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이 다시 확인되었을 뿐이다.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두 갈래로 분열된 민심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에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희망은 있다.
무너진 것은 권력자의 자리지 국민의 주권이 아니다.
히틀러가 프랑스를 점령했지만 에펠탑 정상에는 오르지 못했던 것처럼 어떤 권력도 국민의 정신까지 지배할 수는 없다.
오늘 우리는 헌법 위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며 갈등을 넘어 화합으로 분열이 아닌 연대로 이 땅의 내일을 헌법정신과 민주시민의 결집된 역량으로 열어가야 한다.
헌법의 가치와 시민 의식이 모인 힘이 이번 위기를 극복하게 한 원동력이었으며 민주공화국을 지탱하는 진정한 힘이 어디에 있는지를 다시금 확인시켜 준 것이다.
이제 우리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분열이 아닌 통합으로, 편 가르기가 아닌 상생으로 나아가야 한다.
대한민국이 다시 도약할 수 있을지는 깨어 있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선택에 달려 있으며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이 나라의 주인은 바로 우리 모두다.










석열이는 어릴때부터 인격 형성에 장애가 있고 어찌하다 검사되어 떠 받듬만 받고 오로지 자기가 가장 똑똑하다는 인성으로 대통령이 되어 김거니한테 가스라이팅 당해 주위사람들 말은 귀담아 듣지않고 특히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하는 사람을 가차없이 내치는 성격에 바른말도 못한다는 폭로가 이제 쏟아진다 하루빨리 내란세력 엄벌로 법치를 세우고 21대 새로운 대통령을 뽑아 다시 땅에 떨어진 국격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