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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오피니언 칼럼

설득하지 못하는 권력은 독단일 뿐이다.

더탑뉴스 작성자: 더탑뉴스
2026년 03월 02일
작성됨 칼럼
0
강승구 /경영학 박사/원광대학교 경영학부 초빙 교수

 

선거는 화려한 승부로 막을 내리지만, 행정은 설득이라는 고통스러운 과정으로 시작된다. 시장에 당선되는 순간 그는 도시의 최고 책임자라는 명예를 얻지만, 동시에 시민과 의회에 자신의 정책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무한 책임의 설명자’가 된다.

시장은 결정을 내릴 권한이 있으나, 그 결정을 완성하는 것은 시장 개인이 아니다. 정책은 시장의 책상 위에서 기안되지만, 그것이 생명력을 얻어 시민의 삶에 스며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의회의 문턱을 넘고, 시민의 동의라는 토양 위에 서야 한다.

그러나 작금의 지방자치는 어떠한가. 우리는 ‘강한 시장’이라는 환상에 빠져 독단을 결단으로, 불통을 추진력으로 오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지방자치의 본질은 시민의 자기 결정권에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시민 참여는 4년 주기로 돌아오는 ‘선거’라는 이벤트에 철저히 국한되어 있다. 투표함이 닫히는 순간, 주권자였던 시민은 시정의 관찰자 혹은 수혜의 대상으로 격하된다.

정치적 무관심과 소외감은 여기서 싹튼다. 국민청원 제도나 시민 게시판 등 다양한 소통 창구가 마련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대다수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형식적인 답변에 그치기 일쑤다. 실효성 없는 제도 아래서 시민들은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절감한다. “내가 뽑았지만, 내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라는 절망감은 지방행정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결국 행정과 시민 사이의 거대한 괴리를 만든다.

행정이 설득이라는 민주적 절차를 망각할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공동체로 돌아온다. 최근 논란이 된 익산 로컬푸드 어양점 문제는 집행부의 강력한 힘이 어떻게 갈등을 증폭시키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지방자치법상 시장은 집행기관의 수장으로서 막강한 권한을 가진다. 하지만 그 힘이 현장의 목소리를 압도하고, 이해관계자와의 충분한 숙의 없이 행사될 때 그것은 ‘행정적 폭력’에 가까워진다. 로컬푸드 운영 체계의 변화나 시설 운영의 향방은 단순히 효율성의 논리로만 접근할 문제가 아니었다. 농민의 생존권, 시민의 먹거리 안전, 그리고 지역 경제의 순환 구조가 얽힌 복합적인 사안이다.

그런데도 집행부가 ‘결정했으니 따르라’라는 식의 태도를 보인다면, 이는 행정의 품격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일이다. 설득이 빠진 정책은 독단으로 비친다. 그 결과는 정책의 연착륙이 아니라 극한의 대립과 법적 분쟁, 그리고 시민 사회의 분열이다. ‘강함’은 독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반대 세력까지 포용하여 합의를 끌어내는 조정 능력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방자치의 구조는 분명하면서도 명확하다. 시장은 집행하고, 의회는 심의하고 의결한다. 아무리 훌륭한 공약이라도 예산이 통과되지 않으면 종이 위의 문장에 불과하며, 조례가 제정되지 않으면 제도는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정책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것은 결국 의회다.

의회를 설득한다는 것은 결코 비굴한 정치적 흥정이 아니다. 그것은 행정의 투명성을 검증받는 과정이다.

첫째 데이터의 공유, 정책의 타당성을 입증할 객관적 수치를 제시했는가?

둘째 실패의 분석, 다른 지자체의 선례를 철저히 검토했는가?

셋째 시민 여론의 수렴, 찬성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반대하는 이들의 목소리까지 담아냈는가?

이러한 단계적 과정이 생략될 때, 의회는 견제라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의회를 적으로 규정하는 순간, 시정은 긴장 속에 놓인다. 예산은 삭감되고, 조례는 수정 요구를 받으며, 행정은 방어적으로 변한다. 공무원 조직은 위축되고 도시의 시간은 허비된다. 시장이 자신의 정치적 자존심을 지키는 동안, 시민의 삶은 정체된다.

설득은 상대를 굴복시키는 게임이 아니라, 책임을 나누는 지혜다. 뛰어난 리더는 공(功)을 독점하지 않는다. 성과를 의회와 공유하고, 시민의 참여를 성취의 핵심 동력으로 삼는다. “제가 하겠습니다”가 아니라 “함께 만들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리더십, 이것이 바로 행정의 분위기를 바꾸는 결정적 차이다.

의회 설득에도 고도의 기술과 태도가 필요하다. 의원 개개인의 지역구 현안을 이해하고, 정책이 어떻게 시민의 삶을 개선할지 감정이 아닌 숫자로 증명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의회를 ‘통과 버튼을 누르는 기계’가 아닌, 시민의 또 다른 대표기관으로 존중하는 태도다.

시장이 의회를 존중할 때 시민은 비로소 안정감을 느낀다. 갈등이 조정되는 과정을 보며 도시의 방향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믿게 된다. 반대로 충돌이 반복되면 정책의 옳고 그름을 떠나 시민들의 마음에는 불안과 냉소가 쌓인다. 결국, 리더십은 결과물뿐만 아니라, 그 결과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평가받는다.

지방자치는 견제와 균형 위에 서 있다. 이 구조는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 경영과는 다르다. 느릴 수밖에 없고, 답답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느림 속에는 ‘숙의’가 있고, ‘합의’가 있으며, ‘공동 책임’이 있다. 설득을 위해 소요되는 시간은 낭비가 아니라, 장차 발생할 갈등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가장 경제적인 투자다.

도시를 바꾸는 위대한 설계는 시장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올 수 있지만, 그 건물을 올리는 벽돌은 시민과 의회가 함께 쌓아야 한다. 벽돌을 쌓는 손이 많을수록 그 건물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요새가 된다. 시장의 진짜 실력은 화려한 보도자료나 대형 이벤트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협의의 자리에서 얼마나 진솔하게 상대의 손을 잡느냐에서 드러난다.

선거에서 이긴 시장은 ‘권한’을 부여받는다. 그러나 ‘신뢰’는 오직 설득을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다. 법이 부여한 권한은 유효기간이 있지만, 관계가 만든 신뢰는 시정이 끝난 뒤에도 도시에 남는다.

결국, 시장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좋은 정책을 내놓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 정책이 실제로 굴러갈 수 있는 사회적 환경과 협력적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일이다. 의회와 시민을 설득하는 능력은 있으면 좋은 ‘옵션’이 아니라, 리더로서 갖춰야 할 ‘필수 요건’이다.

설득하지 못하는 권력은 오래가지 못하며, 시민을 소외시킨 행정은 반드시 저항에 부딪힌다. 그러나 끊임없이 설명하고 진심으로 설득하는 리더십은 갈등을 넘어 지속 가능한 도시를 남긴다. 행정의 품격은 집행부가 휘두르는 힘의 크기가 아니라, 그들이 보여주는 설득의 깊이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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